VOLUME II · UNIT V · LESSON 03

조선 후기 사회 모순과 대응

정조 사후 세도정치가 시작되며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삼정의 문란으로 농민이 고통받고, 홍경래의 난과 임술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번졌다. 그리고 1860년,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한다.

LEARNING GOAL성취기준
9역12-03 조선 후기 세도정치·삼정의 문란·농민 봉기·동학을 살펴보고, 사회 모순과 대응의 양상을 이해한다.
SECTION · 01

세도정치 — 60년의 권력 독점 (1800~1863)

정조가 1800년 갑자기 죽고, 11세 순조가 즉위했다. 어린 왕을 등에 업은 외척 가문 — 특히 안동 김씨풍양 조씨 — 가 권력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60년 간 이어진 세도정치는 조선을 무너뜨린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조선 후기 풍속
풍속화 속 백성이 시기 농민의 삶 — 그러나 세금과 부정에 시달림.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 — 1861김정호의 지도가 그려지던 시기, 전국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 60년 세도정치의 흐름

1800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 · 순조 즉위
정조가 49세에 의문스럽게 죽음. 11세 순조 즉위. 정조의 처가 안동 김씨(김조순)가 섭정의 실권을 잡음.
1801
신유박해 — 천주교와 실학자 탄압
노론 벽파가 정약용 등 정조의 측근(시파)을 천주교 신도라며 대거 숙청. 정약용은 18년 강진 유배. 황사영 백서 사건. 천주교 신자 약 100명 처형.
1800~1834 · 순조
안동 김씨의 시대
김조순·김좌근 등이 의정부·6조의 요직 독점. 왕은 허수아비, 외척이 실질 통치자. 매관매직(돈으로 관직 사기) 횡행.
1834~1849 · 헌종
풍양 조씨가 잠시
헌종의 외척 풍양 조씨(조만영)가 잠시 권력 잡음. 그러나 곧 다시 안동 김씨가 회복.
1849~1863 · 철종
안동 김씨의 절정 — 강화 도련님
왕족 중 학문도 못 배운 19세 청년(이원범)이 강화도에서 왕으로 끌려옴. 글을 잘 모르고 정사에 무능 — 안동 김씨의 완벽한 꼭두각시. 이때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함.
1863
고종 즉위 · 흥선대원군 집권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흥선군의 아들이 12세에 즉위(고종). 흥선대원군이 섭정 시작 → 세도정치 종식 시도. 그러나 이미 조선은 만신창이.
SECTION · 02

삼정의 문란 — 백성을 짓누른 세 가지 무게

조선의 세금은 전세(토지세)·군포(군역세)·환곡(빈민 구제용 곡식 대여) 세 가지였다. 19세기 들어 이 모두가 어그러졌다 — "삼정의 문란".

⚖️ 삼정의 문란 — 세 가지 폐단

1ST · 전정

전정 (田政)

토지세. 죽은 사람·이미 거둔 땅에서 또 거두기, 황무지에도 세금 부과. 양반·세도가는 면제.

2ND · 군정

군정 (軍政)

군포(군역세). 황구첨정(아기에게도 부과)·백골징포(죽은 자에게도)·인징(친척에게)·족징(이웃에게).

3RD · 환곡

환곡 (還穀)

본래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한 빈민 구제. 그런데 안 갚아도 되는 가짜 돈을 빌려준 척하고 가을에 진짜 곡식으로 회수. 가장 악랄.

SOURCE · 정약용의 「애절양」
『여유당전서』 — 한 백성의 비극

"갈밭마을 젊은 아내, 통곡소리 우렁찼네. 관문 향해 울부짖고, 하늘 우러러 울어대네. (…) 시아버지 죽었어도 군포(軍布) 매기더니, 갓난아기에게까지 군포를 매기는구나(三政之亂). 더는 못 견디겠다, 스스로 양물(陽物)을 자르며 외치네 — 이래야 군포를 못 매길 것이라고. 칼 잡고 방에 들어 자른 곳 흥건한 피, 한스러워 매기는 군포 자식 낳은 죄로다."

— 정약용 「애절양(哀絶陽)」 (1803) — 양물을 자른 남자에 대한 시
DEEP DIVE · 정약용의 「애절양」

"군포 때문에 양물을 자른 남자"

1803년,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어 있을 때 옆 마을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 농민이 너무 가난해 군포를 낼 수 없자, 관리들이 죽은 아버지와 갓난 아들의 이름으로까지 군포를 매겼다. 그러자 그 농민이 "이놈의 자식 때문에 군포를 매긴다"며 자기 성기를 잘랐다. 정약용이 이 이야기를 듣고 쓴 시가 「애절양」이다.

"이런 비극이 어찌 한 사람의 일이겠는가? 전국에 수없이 많은 농민이 똑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 다만 자기 몸을 자르지 않을 뿐이다." — 정약용 「애절양」의 시 후기 (의역)

이 시 한 편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 — 국가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가장 처참한 증언이다. 그리고 이런 고통이 결국 농민들을 봉기로 몰아갔다.

SECTION · 03

홍경래의 난과 임술 농민 봉기

백성은 마침내 분노했다. 1811년 평안도에서 홍경래의 난, 1862년 진주에서 시작된 임술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번졌다. 그러나 모두 진압되었고,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 두 차례 대규모 봉기

1811.12~1812.4
홍경래의 난 — 평안도
몰락 양반 홍경래가 지방 차별(서북 지역)·세도정치에 분노해 봉기. 영세 농민·광부·상인 등이 가담. 청천강 이북을 거의 장악 → 정주성에서 5개월 농성 후 진압. 죽은 자 약 2,000명.
1862.2~12
진주 농민 봉기 — 임술 농민 봉기의 시작
진주 농민 유계춘이 주도. 환곡 부정에 분노 → 진주성 포위. 정부가 박규수를 안핵사로 보내 진정.
1862.3~10
임술 농민 봉기 — 70여 곳으로 확산
진주에 이어 충청·전라·경상 일대로 봉기 확산. 70여 군현에서 농민 봉기. 정부가 삼정이정청을 설치해 개혁 약속 → 그러나 곧 흐지부지.
1862~
사회적 변화의 신호
봉기 자체는 진압되었지만 —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식이 평민들 사이에 퍼짐. 동학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토대 마련.
SECTION · 04

동학 — "사람이 곧 하늘" (1860)

1860년, 경상도 경주의 가난한 선비 최제우(수운)가 새로운 종교·사상을 창시했다. "동학(東學)" — 서양에서 온 천주교(西學)에 대항하는 우리의 학문이라는 뜻. 그리고 그 안에 가장 혁명적인 말이 있었다 —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

최제우
최제우 (수운, 1824~1864)동학 창시자. 1864년 사형.
최제우 동상
최제우 동상 (경주)"사람이 곧 하늘" — 한국 사상사의 분기점.
천도교 중앙대교당
천도교 중앙대교당 (서울)1921년 완공. 동학의 후신 — 3·1 운동의 산실.

📜 동학의 등장과 발전

1860.4.5
최제우의 득도
37세의 최제우가 경주의 자기 집에서 신비 체험. "한울님"의 음성을 듣고 동학을 깨달음. 백성을 구할 새로운 도(道)를 찾았다고 선포.
1861~1863
동학의 전파
『용담유사』(한글 가사)·『동경대전』(한문 경전) 저술. 영남 일대에서 빠르게 전파. 신도가 수만 명으로 늘어남.
1864.3.10
최제우 사형 — 좌도혹민(左道惑民)
정부가 동학을 "사도(邪道)"로 규정. 최제우를 좌도혹민(잘못된 도로 백성을 미혹시킴) 죄로 대구에서 사형. 그러나 동학은 지하에서 더 강해짐.
1864~1898
최시형의 시대 — 2대 교주
최제우의 제자 최시형(해월)이 2대 교주. 30년 도피 생활 속에서 동학을 전국으로 확산.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事人如天)"는 가르침으로 발전.
1894
동학 농민 운동 (다음 단원)
전봉준의 동학 농민 운동으로 폭발 — 다음 단원에서 자세히. 동학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첫 거대한 사회 운동으로 발전.
1905~
천도교로 개칭
3대 교주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 1919년 3·1 운동의 핵심 종교 — 33인 중 15명이 천도교.
SOURCE · 동학의 핵심 가르침
최제우 『동경대전』 · 최시형의 말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 한울님이 있으니, 사람을 대하기를 하늘을 대하듯 하라(事人如天). 양반과 상민이 따로 없고,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 않으며, 어른과 아이가 같으니 — 모두 한울님의 자녀라."

— 최제우·최시형의 가르침을 종합
DEEP DIVE · "사람이 곧 하늘"

한국 사상사의 결정적 한 마디

최제우가 외친 "인내천(人乃天)"은 한국 사상사의 분기점이다. 그 전까지 조선은 유교적 신분제 사회였다 — 양반은 양반답게, 천민은 천민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도덕. 그런데 최제우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한울님의 화신"이라고 선포했다.

이 말의 의미를 풀어보면:

  • 신분제 부정 — 양반과 노비가 다르지 않다.
  • 남녀 평등 — 여자도 한울님의 화신이다.
  • 어린이 존중 — 어린이도 한울님이다.
  • 인간 존엄 — 모든 사람이 본래 신성하다.
"동학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근대적 평등 사상의 한국적 표현이었다. 서양 계몽주의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상이, 동양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표현으로 한반도에 처음 나타난 것이다." — 종교학자들의 평가

그래서 동학은 단순한 종교에서 멈추지 않고 — 동학 농민 운동(1894), 3·1 운동(1919), 그리고 현대 한국의 민주주의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사상의 흐름의 출발점이 되었다.

SECTION · 05

참 / 거짓 — 8문제로 정리

각 진술이 참인지 거짓인지 선택하고, 전체를 확인해 보자.

🪶 조선 후기 사회 모순 참·거짓 8문제

0 / 8

각 진술의 참/거짓을 선택. 모두 선택한 후 "정답 확인"을 누르면 해설이 나온다.

1800년 정조 사후 안동 김씨가 권력을 잡으면서 60년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참. 정조의 처가 안동 김씨(김조순)가 어린 순조의 섭정을 통해 권력 장악. 매관매직·견제 시스템 마비 등이 이어졌다.
1801년 신유박해로 정약용 등 정조의 측근들이 천주교 신도라며 대거 숙청되었다.
참. 노론 벽파가 시파를 탄압한 정치적 사건. 정약용은 18년 강진 유배. 형 정약종은 사형,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
삼정의 문란에서 환곡은 본래 부자에게 곡식을 거두는 부유세였다.
거짓. 환곡은 본래 봄에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한 빈민 구제 제도였다. 그런데 19세기에는 강제로 빌려주거나, 가짜 곡식을 빌려준 척하고 진짜 곡식으로 회수하는 등의 부정이 가장 심각.
정약용의 「애절양」은 군포 때문에 자기 양물을 자른 한 농민의 비극을 담은 시다.
참. 1803년 강진 유배 중 정약용이 옆 마을의 비극을 듣고 쓴 시. 군정의 문란(황구첨정·백골징포)이 얼마나 심했는지 보여주는 가장 처참한 증언.
홍경래의 난(1811~1812)은 평안도의 지역 차별과 세도정치에 분노한 몰락 양반·상인·농민의 합동 봉기였다.
참. 다른 농민 봉기와 달리 특정 지역(평안도) 차별이 큰 원인. 청천강 이북을 거의 장악했지만 정주성 농성 후 진압.
1862년 임술 농민 봉기는 진주에서 시작되어 70여 군현으로 확산되었고, 정부가 삼정이정청을 설치했지만 곧 흐지부지되었다.
참. 진주에서 유계춘이 시작 → 충청·전라·경상으로. 정부가 박규수를 안핵사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했지만 개혁은 흐지부지.
동학은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로, 천주교의 한 분파다.
거짓. 정반대다. 동학(東學)은 서학(西學·천주교)에 대항해 한국의 학문을 의미하며, 최제우가 1860년 창시한 한국 토착 종교·사상이다.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 핵심.
동학의 "사람이 곧 하늘"(인내천) 사상은 신분제 부정·남녀 평등·인간 존엄을 포함한 근대적 평등 사상이다.
참. 동학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근대적 평등 사상의 한국적 표현. 후일 동학 농민 운동(1894)·3·1 운동(1919)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사상의 흐름.
SECTION · 06

한 줄로 정리하면

핵심 정리

  • 세도정치(1800~1863, 60년): 정조 사후 순조·헌종·철종 시기 안동 김씨·풍양 조씨가 권력 독점. 매관매직, 견제 시스템 마비.
  • 1801년 신유박해 —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정조 측근(정약용 등) 숙청. 정약용은 18년 강진 유배.
  • 삼정의 문란: 전정(토지세)·군정(군포: 황구첨정·백골징포)·환곡(가장 악랄). 정약용 「애절양」이 그 비극의 증언.
  • 홍경래의 난(1811~12): 평안도 차별 + 세도 분노. 임술 농민 봉기(1862): 진주에서 시작 → 70여 군현. 삼정이정청 설치되나 흐지부지.
  • 1860년 최제우가 동학 창시. "사람이 곧 하늘(인내천)"·"후천개벽". 1864년 최제우 처형 → 최시형·손병희가 계승. 1894 농민 운동, 1919 3·1 운동의 토대.